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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근미래의 이야기. 청년 인구가 대폭 감소하며 여러 국가에서 외국인이 유입된다. 득세한 극우 정권은 삼엄한 감시 체계를 도입하고 국민들 사이엔 차별과 혐오가 횡행한다. 이윽고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비상계엄을 내린다. 시위대는 끌려가고, 학교에마저 ‘판옵티’라는 AI 감시망이 도입되는 현실. 한 청년은 부르짖는다. 이 세대에 희망이 있는가? 다른 청년은 힘주어 말한다. 함께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자. 또 다른 청년은 와하하 웃는다. 어차피 세상은 망했고 우리는 음악이나 듣자. 놀랍게도 이것은 한국이 아닌 일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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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마치 ‘지난해 한국에서 윤석열이 시도한 비상계엄령이 성공했다면’이란 평행세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집회 및 시위,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언론출판의 자유는 틀어 막히며 밤이면 집밖으로도 나갈 수 없었을, 그 사각지대에서 재외국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제일 먼저 죽어 나갔을 미래. 어디서든 상황은 크게10억만들기프로젝트
다르지 않다면, 세계에 들이닥친 신 파시즘이라는 이 공동의 재앙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네오 소라 감독은 영화 속에 다양한 청소년들을 등장시킨다. 재일교포 4세대이자 고학생인 코우, 비교적 여유로운 집안 환경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유타, 남자지만 치마 교복을 입고 다니는 아타, 중국계지만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밍, 흑인 나노신소재 주식
혼혈로 언젠가는 미국에 가려는 톰. 극심해지는 극우 정권의 독재와 학교의 감시 아래서, 그들의 각자 다른 계급성과 위치성, 그리고 성향은 그들의 우정에 미묘한 균열을 만든다.
코우가 운동권 소녀 후미를 만나 시위에 나가 목소리를 내고 학교의 부당한 처우에 맞설 때, 유타는 망해버린 세상에서 자신과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음악 동아리로 숨어들equity
어가 날이 새도록 우정과 음악만을 즐기고 싶다. 감독은 코우를 정답으로도, 유타를 오답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요지경이 된 세상, 방황하는 미성년들의 상기된 얼굴과 다정하고도 연약한 관계를, 작은 새를 양손에 포개듯 섬세하게 포착할 뿐이다.
영화 ‘해피엔드’를 연출한 네오 소ETF수익률
라 감독. ⓒ Aiko Masubuchi
네오 소라 감독은 이를 자전적인 이야기라 밝힌다. 뉴욕에서 자란 감독은 일본에서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반원전 운동과 미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반트럼프 시위 등을 겪으며 선명한 문제의식을 품고, 자신이 서야 할 곳과 가야 할 길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별했던 친구와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한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피엔드’를 만든 감독은 현재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밝히기 위해 토론토국제영화제 포토월에 그들의 전통 복장을 착용한 채 섰고, ‘해피엔드’의 포스터를 팔아 팔레스타인에 수익금을 기부하는 중이다.
이쯤에서는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의 아버지이자 음악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진보적인 인사였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학생운동부터 시작해 반핵 운동, 일본 헌법 9조 개정 및 자위권 발동에 강하게 반발한 반전운동, 원전 반대를 위시한 환경운동, 그리고 부부 별씨 제도의 도입 등 여권 신장 운동에도 앞장섰다.)
테크노 장르를 비롯한 반항적인 음악들이 ‘해피엔드’를 영혼에서부터 골조까지 얼마나 탄탄하게 구성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또다시 음악인인 그의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처럼 사회문화적 수혜를 듬뿍 입은 ‘네포 베이비’(족벌주의를 뜻하는 ‘네포티즘’의 줄임말인 ‘네포’와 아이를 뜻하는 ‘베이비’가 결합한 신조어로, ‘금수저’를 이르는 말)라니, 아버지의 문화적 유산을 상속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아름답게 빚어 내다니. 맹렬한 질투가 일었다.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애초에 나는 부모의 이름을 등에 업고 부족한 실력으로 여기 저기 활개를 치고 다니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네포 베이비들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았다. 부모의 발끝만치도 못 쫓아오는 자식들이 부모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비루함에 오히려 혀를 쯧쯧 차는 쪽이었다. 그러나 첫 작품부터 번쩍이는 재능을 보여준 ‘네포 베이비’에 대해선 오직 시기심과 부러움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아빠가 류이치 사카모토인 것부터 반칙 아니야?’ 툴툴대다가도, 뉴욕에서 독립적으로 자란 네오 소라가 데뷔작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에서 아버지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해 담아내는 모습을 보면 그가 독자적인 예술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선선한 질투심만이 남을 뿐이다.
한편 사회비판적이거나 정치적인 영화에는 미감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다면 네오 소라의 작품을 보며 깨끗이 버릴 것을 권한다. ‘해피엔드’는 음악, 미장센, 배우들의 연기,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감독 에드워드 양, 소마이 신지의 미학에 테크노와 SF를 입혀 ‘네오’하게 부활시킨, 극한의 탐미주의자가 만든 영화다.
배우 경험이 없는 모델, 사진가, 일반인 등 신인들을 배우로 기용한 것도 신의 한 수. 실제로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듯한 청춘의 얼굴들과 날 것의 감정이 스크린을 채운다. 러닝셔츠만 달랑 입은 쿠리하라 하야토와 히다카 유키토의 상기된 얼굴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청춘의 생생함과 청신한 아름다움이 물씬 묻어난다. 창작자로서 많은 예술가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인 것. 윤리와 탐미가 공존하는 것.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우리가 가까운 미래라는 말로 심리적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는 근미래는 사실 이미 도착해 있다. 일본 여행을 가면 도시의 편의점에서, 혹은 지방의 전통 여관에서, 제3세계 국가 청년들이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일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친다. 네오 소라가 그려낸 근미래의 일본처럼, 어느 나라도 단일민족국가라는 신화에 기대서는 미래를 찾을 수 없는 시대다. 한국 또한 이미 아래에서부터 다문화가 진행중이다. 농촌 지역, 공장이 많은 도시들, 당장 서울 안의 대림이나 신도림만 가봐도, 학급 당 중국동포 혹은 제 3세계 국가 출신 학생들 비율이 상당수다. 그들을 향한 온라인상의 혐오도 이미 짙고 깊다.
닥쳐오는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환경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재일교포인 코우의 영주권을 매번 검사하려 들고, 의심하고 혐오하는 자경단 같은 존재가 될 것인가? 혹은 고학생 코우가 무사히 장학금을 받아 대학진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친구들이 될 것인가? 나아가 코우와 함께 자유와 권리를 외치는 동료가 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이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은 격주 수요일 낮 12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
이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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