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서울=뉴스1)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동남아시아를 떠올릴 때 화교(혹은 화인)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계 이주민, 곧 화교의 수는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5500만~6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최소 3000만 명 이상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전 세계 화교의 고향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중국 남부 지역, 특히 광둥성, 푸젠성, 하이난섬 등과 동남아시아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인적 교류가 축적되어 온 역사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국 남동부와 동남아시아 사이의 교류는 아시아10호 주식
이미 당·송 시기부터 확인된다. 비록 대규모 이주는 아니었지만, 상인, 승려, 해적, 노예, 관료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남중국해를 건너 동남아로 이동하거나 동남아를 경유해 인도로 향한 기록이 존재한다. 반대로 당나라 시기 광저우에는 인도인, 페르시아인, 말레이인 등이 건너와 거주지를 형성하고 집단으로 정착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송대 푸젠성 취안저우를매수타이밍
중심으로 꽃피운 해상 교역은 원대를 거쳐 명대 영락제가 파견한 정화(鄭和)의 대원정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후 명·청 시기의 해금 정책으로 인해 공식적 교류는 제한되었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민간 밀무역과 해적 활동이 활발해졌고, 돌아가지 못한 채 장기 거주하는 중국계 이주민 공동체가 동남아 지역 곳곳에 형성되었다. 믈라카(Melaka), 마닐라(Manila주식유료사이트
), 아유타야(Ayutthaya), 바타비아(Batavia 현 자카르타), 수라바야(Surabaya) 등은 대표적인 화교 거주지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계의 대규모 이주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의 확장과 식민체제의 정착과 함께 본격화되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미국 등 서구 열강은 동남아시아 전역에 걸쳐제4이동통신관련주
플랜테이션 농장, 광산,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화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약 100년간 2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계 이주가 동남아 지역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화교의 수는 800만~900만 명에 이르렀으며 이환인제약 주식
역시 공식 등록된 수치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실제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화교 지도자들은 흔히 자신들을 '천만 화교'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이주 역사를 바탕으로 화교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독특한 경제적 지위를 구축해 왔다. 푸젠, 광둥, 객가, 하이난, 차오저우 등 방언 집단 혹은 씨족 중심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상호 보호 체계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상업적 네트워크가 정교하게 발전했다. 흔히 화교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시(關係)'와 '신용(信用)'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폐쇄적이고 배타적 신뢰 중심의 상업 네트워크를 반영하는 것이다.
식민체제 아래에서 화교들은 식민 정부와 협력하며 '중간 계급'으로서 기능했다. 이는 식민 당국이 대다수 현지인을 직접 통제하기보다는 그들 위에 이주민 혹은 소수 종족을 매개로 세금 징수와 자원 착취를 수행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 화교들은 상업 기술과 근대 문명 수용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했고 빠른 시간내에 자본을 축적하는 데 성공했다. 자바의 '설탕왕', 말라야의 '고무왕', '금융왕', '아편왕' 등의 칭호를 얻은 화교 자본가 가문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였다. 아편 무역, 고리대, 대농장 운영, 상업 유통, 그리고 그 수익을 부동산과 금융 자본으로 재투자하는 순환 구조를 통해 부의 축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약 100년에 걸친 이 상업 자본의 누적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지나 민족주의가 확산되던 시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화교 자산가들이 중국의 공산화 이후 본국 귀환을 거부하고 동남아시아에 남아 현지에 뿌리를 내리는 선택을 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식민지 시기의 갈등과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반감은 독립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차별, 폭력, 심지어 학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교들은 폐쇄적 공동체와 현지 정권과의 정치적 연계를 통해 생존 기반을 유지했다.
그 결과 오늘날 화교 기업가들은 동남아시아 민간 자본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매년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상위 1000위 안에 드는 동남아 출신 부호 중 약 70~80%가 화교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화교 기업으로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의 홍레옹 그룹(Hong Leong Group), OCBC · UOB 등 금융 그룹, 인도네시아의 쟈룸(Djarum) 및 살림(Salim) 그룹, 태국의 CP 그룹, 필리핀의 SM 그룹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폐쇄적 경영과 정보 비공개 방침으로도 유명하다. 재산이 철저히 은닉되며, 소유 구조나 투자 흐름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현대 동남아 화교 자본 및 기업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은데, 아주 자잘한 흔적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특징을 집어보면 다음과 같다.
동남아 화교 자본의 핵심 구조로 흔히 지목되는 '?시'는 단순한 부패의 은어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국가 제도가 완비되지 않았거나 행정력이 미약한 환경에서 거래의 신뢰를 담보하는 비공식 제도적 장치로 볼 수도 있다. 예컨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경우 공공부문의 부패와 법률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조건에서 화교 상인들은 폐쇄적 혈연·지연·업연 기반의 상업 네트워크를 통해 경영의 예측 가능성과 자본 유동성을 높여 왔다. 특히 가족 단위 기업 운영은 내부 통제 비용을 줄이고 정보의 외부 유출을 막으며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수직적 구조였다. 이는 단순한 유교적 윤리라기보다 제도적 제약 하에서의 실용적 최적화라 평가할 수 있다. '?시'는 때때로 부패의 통로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의 공공 제도가 충족시키지 못한 안정성과 신뢰의 요구가 있었다.
또한 동남아 화교 기업은 일반적으로 족벌형 구조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들은 점차 산업별 전문화를 도모하며 다각적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하르토노(Hartono) 형제가 운영하는 쟈룸 그룹은 단순 정향 담배(끄레떽) 제조업을 넘어서 금융, 부동산, 유통, 통신까지 다변화했고 태국의 CP 그룹도 농업 생산을 넘어 슈퍼마켓 체인, 통신, 미디어까지 포괄하는 초거대 복합 기업집단(conglomerate)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확장은 단지 규모의 경제를 넘어 공공 규제에 대한 적응과 사업 위험의 분산이라는 전략적 계산에 기초한다. 즉 전통적인 가족 중심 경영을 근간으로 유지하되 기업 법인화와 상장, 다국적 지분 확보 등을 통해 현대화된 기업 구조로 진화해 왔다.
그리고 화교 자본은 역사적으로 현금 유동성 확보에 유리한 산업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같은 이주자본으로서의 특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동남아 화교 자본은 금융(은행·투자), 부동산, 유통 산업에 가장 높은 비중으로 분포되어 있다. 동남아 30대 화교 기업 중 약 70%가 금융·부동산 관련 업종에 속해 있으며, 이는 식민지 시기의 상업 중개자 역할을 계승한 구조적 유산이기도 하다. 이는 장기 산업 투자보다는 단기 유동성과 안정된 수익률 확보에 초점을 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제조업(특히 중화학 공업) 진출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이는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거나 국가가 국유기업 중심의 산업화를 추구했던 동남아시아 경제 구조와도 관련이 깊다. 다시 말해 화교 자본은 속한 국가의 산업 구조 속에서 효율적인 자본 순환 전략을 취한 결과로, 유통 · 금융 · 부동산이라는 산업에 집중된 것이다.
화교 자본은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국민경제' 바깥의 이질적 자본으로 간주되어 왔다. 말레이시아의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은 화교 경제력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말레이계의 경제 참여를 유도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는 결국 '토착경제 vs 화교 경제'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낳았으며, 화교 자본은 자신의 역할을 제도 내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라 화교 기업들은 공적으로 튀는 행태를 줄이되, 정권과의 비공식적 유착을 통해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화교 자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제도 환경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력이다. 이들은 법적 · 공공적 제도가 미비한 환경에서는 ?시 중심의 비공식 거래에 의존하며 생존하고, 정권 교체나 규제 변화가 있을 경우 정치 엘리트와의 협력 관계를 빠르게 전환하여 새로운 국면에 대응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시기 살림 그룹은 정권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수하르토 몰락 이후에도 자산 일부를 조정하고 금융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정권 리스크에 대한 유연한 조절 능력을 보였다.
이처럼 화교 자본은 시장 기반의 이익 추구와 국가 권력과의 교섭이라는 두 레벨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이다. 이들은 단순한 이익 추구집단도 아니고, 국가의 꼭두각시도 아니다. 오히려 이주 자본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정치 · 경제 · 문화의 접점에서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을 끊임없이 추구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존'이야말로 화인 자본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용어일 것이다.
stopy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