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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해준송효
날짜 : 25-11-01
조회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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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친구들
‘석양의 화가’ 윤중식. 미남에다 옷맵시가 좋았던 그는 연극배우를 꿈꿀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사진 유족]
윤중식(1913~2012)의 그림에 등장하는 빛은 부드럽고 따뜻한 역광이다. 역광이 사물을 적시는 시간은 해 질 무렵이다. 한낮이 내가 사물을 뚜렷하게 바라보는 시간이라면 대부업연체 , 저녁은 등 뒤에 빛을 인 사물이 나를 응시하는 시간이다. 내가 빛을 보는 게 아니라 빛이 나를 보는 시간이다. 긴 파장의 붉은 빛은 우리의 몸과 마음 안으로 깊게 후비고 들어온다. 그 빛에 실린 지나간 시간과 기억들이 파르르 떨리면서 우리의 의식은 그리움을 향해 깨어나기 시작한다.
윤중식은 평양 출신이다. 부유한 sbi저축은행 대출 정미소 집 아들이었다. 숭실중학교를 다녔다. 숭실중 출신의 화가로는 김원·박고석·김학수가 있다. 윤중식은 거의 매일 대동강을 찾았다. 봄·가을에는 그림을 그리고, 여름에는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연광정(練光亭) 아래 얼음판에 구멍을 내어 낚싯줄을 길게 아래로 떨어뜨려 납지리 낚시를 했다. 학교를 대표하여 서울의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수영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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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송자 등 제자들 서울 미술대회 석권
윤중식, 풍경, 캔버스에 유채, 145.5x97㎝, 1968년. 엑셀재무계산기 [사진 갤러리 현대]
중학교 재학 중에 조선미술전람회에 내리 3년 입선했다. 부친 윤봉서의 친구 중에 화가 김관호(1890~1959)가 있었다. 고희동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의 흡수합병 서양화 화가다. 김관호의 권유로 윤중식은 1935년 동경의 제국미술학교로 유학하게 된다.
제국미술학교를 함께 다닌 화우로는 이쾌대·구종서·김학수·김두한·김학준 등이 있다. 윤중식의 화풍에 짙은 영향을 남긴 우메하라 류자부로(梅原龍三?, 1888~1986)가 주도하는 국화회에 몇 차례 출품했다. 1939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 같은 해 동보(東?)영화사 미술부에 입사했다. 1941년부터는 평북 선천의 보성여고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했다. 1943년 평양의 체신회관에서 김병기·문학수·이중섭·이호련·황염수 등과 ‘6인전’을 열었다.
평양에서 해방을 맞았다. 평양은 공산 치하로 변했다. 미술동맹에 가입하라는 닦달이 성가셨다. 압박을 피하려 새벽에 도시락과 화구를 챙겨 대동강으로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했다. 6·25 전쟁이 터졌다. 1·4 후퇴 때다. 윤중식 가족은 피난길에 나섰다. 부인과 1남 2녀의 자식을 이끌고 윤중식은 평양을 떠나 사리원 해주를 거쳐 개성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사리원을 떠났을 때 피난민 대열을 적군으로 착각한 미군의 공습이 있었다. 총알이 쏟아졌다. 대열이 흩어지고 창졸간에 윤중식과 아들, 막내딸 일행의 반대편으로 부인과 큰딸이 사라졌다. 그대로 영영 생이별이었다.
이번에는 인민군이 남하하는 피난민을 앞질렀다. 윤중식은 인민군에게 잡혀 도로 북으로 향해야만 했다. 윤중식 가족을 가련하게 여긴 한 인민군 병사의 묵인으로 대오를 탈피, 개성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개성 남방 시오리 지점에서 국군을 만났다. 드디어 안심하고 부산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막내딸은 결국 부산에 오는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윤중식은 아들 대경이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다섯 명의 식구가 두 명으로 줄었다. 부인과 큰딸은 끝내 찾지 못했다.
부산에서 종이와 수채화 물감을 구한 윤중식은 피난길의 참상을 28장의 드로잉으로 남겼다. 윤중식·윤대경 부자는 부산 영주동에 터를 잡았다. 윤중식은 나름 생계를 모색했다. 기름에다 양잿물을 넣어 자가제 비누를 만들었다. 처남과 동업이었다. 비누를 팔러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징집되어 낙동강 전선에서 지게로 포탄을 나르는 보급대원으로 끌려갔다. 극적으로 풀려나 종군화가가 되었다. 신분이 안정되었다. 한묵·이중섭 등 피난지의 화가들과 합류했다.
삶은 궁핍했다. 궁핍 속에서도 손님은 찾아왔다. 한번은 어떤 손님이 찾아왔길래 굴비 한 마리를 구워 대접했다. 손님은 조기 머리뼈 속에 박혀있는 쌀알만 한 돌 하나만 빼고 너무나 귀하고 아까운 듯, 살과 뼈 모두 다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윤중식도 생선 머리를 좋아한다. 배도 고프다. 그렇지만 손님의 극단적인 허기 앞에선 자신의 허기를 속여 여유를 보여야만 했다.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가 있었다. 미군 C레이션(전투식량) 상자로 만든 영주동 피난민 판잣집은 쉽게 화마에 휩싸였다. 다행히 윤중식의 집은 토담집이라 불에 타지는 않았는데 불길은 피해야 했다. 황급한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아들을 위해 만든 나무토막 탱크였다.
상경하여 충정로 138번지 단칸방에 터를 잡았다. 1954년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의 평을 쓴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그를 ‘석양의 화가’라고 불렀다. 이 무렵 국전에 특선, 추천작가 등 두각을 드러내었다. 국전에 심사를 나가는 날이면 저녁에 술자리가 벌어졌다. 아들 대경은 아버지의 술자리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박수근 등 윤중식과 가까웠던 이때의 화가들은 술자리에 나타난 어린 대경을 귀여워했다. 대경을 모르는 화가가 없었다.
1955년 창덕여고 미술 교사로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창덕여고 조기홍 교장은 화가 윤중식을 제대로 대우했다. 윤중식에게는 담임·당직·숙직 등을 일체 면제했다. 운동장 한쪽의 소강당에 따로 개인 작업실을 제공했다. 학교의 목수가 이젤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윤중식의 지도를 받은 미술반 학생들은 서울의 미술대회를 싹쓸이했다. 이때의 제자가 조각가 임송자(1940~ )다. 관례상 한 학교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윤중식은 무학여고로 전근했다. 윤중식의 예술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학교의 요구가 있었다. 그날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생활이 다시 궁핍해졌다.
충정로에서 북아현동을 거쳐 1963년, 성북동에 터를 잡았다. 그사이 재혼도 했다. 창덕여고 제자인 임송자와 김국자가 윤중식의 성북동 집을 가보니 먹을만한 양식이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은 삼선교로 내려와서 삼선시장에서 고춧가루를 사고 배추를 절여 즉석에서 김치를 담갔다.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심이 그만큼 컸다.
그림 판 돈으로 양로원·고아원 후원
1991년 서울 성북동 윤중식(가운데줄 왼쪽)의 자택에 모인 동료 작가들. [사진 유족]
1980년, 윤중식은 최영림·임직순·황유엽·황영성 등의 작가 그리고 현대화랑의 박명자 등과 함께 뉴욕을 갔다. MoMA에서 피카소 전시회가 있었다. 젊은 날의 마티스를 좋아했던 윤중식이다. 이번에는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흥분했다. 자극을 받은 윤중식은 빨리 서울로 돌아가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떼를 썼다. 원래대로라면 유럽까지 가야 하는 여행이었다. 나이가 젊은 황영성만 유럽으로 가고 나머지 일행은 서울로 되돌아왔다.
언젠가부터 그림이 팔려 제법 돈이 생겼다. 돈이 생기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다 남을 위해 썼다.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았다.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내의를 기부하면 그걸 다른 데로 빼돌리는 불량한 데도 가끔 있었다. 그걸 방지하려 윤중식은 양로원 노인들의 명단을 받아 내복의 라벨에다 유성펜으로 각자의 이름을 다 적었다. 꼼꼼한 데가 있었다.
북아현동에 살 때 대경과 함께 자주 광나루를 갔다.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모래무지가 참 많았다. 쪽배를 타고 낚시를 던져 모래무지를 잡았다. 이놈들을 간장 조림으로 요리했다. 노년의 윤중식은 생선을 사다가 소금을 뿌려 베란다에 말려 전기 곤로에 석쇠를 올려 구워 먹는 일을 즐겼다. 어릴 때 유복하게 자라서인지 삶의 소박한 즐거움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1995년쯤 필동면옥을 찾았을 때다. 사장이 유심히 윤중식을 쳐다보더니 혹시 평양 출신이 아닌가 물었다. 맞다 하니, 그가 10대 때 자전거를 타고 윤중식의 집으로 냉면 배달을 간 적이 있다 했다. 사장은 대학생 교복을 입고 있던 동경 유학생 윤중식의 빛나던 모습을 기억해내었다.
윤중식은 미남이고 옷맵시가 좋다. 늘 스타일리쉬한 옷차림이었다. 연극배우와 연출도 하고 싶어 했다. 많은 재능과 욕망을 가졌던 윤중식이었지만 그의 삶은 스스로 한마디로 응축된다. “나의 시간, 나만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하려 노력했다. 내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황인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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