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사진=yes24.


황금성게임다운로드 『작별하지 않는다』를 유럽에서 발전시킨 '애도 서사'의 추수追隨라 비난하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을 획득하려면 유럽에서 확립한 애도 서사의 특징을 전제해야만 한다. 애도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인바, 예컨대 백수광부를 애도한다는 이유로 「공무도하가」에 대해 유럽발 애도 서사의 아류라 폄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신분석학 등을 끌어안으며 발전한 바다이야기무료 유럽의 애도 서사는 가까운 존재의 상실에 따른 감정적ㆍ정신적 충격을 원인으로 파악하여 망자 애도와 함께 충격을 극복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 경하에게 인선 아버지나 삼촌은 생명부지의 낯선 존재다. 인선 어머니도 단 한 번 만났을 뿐 그녀에 대한 정보조차 없었다. 애초 상실이 없었으니 원인으로 작동해야 할 메이저릴게임사이트 상실에 따른 감정적ㆍ정신적 충격 또한 선재先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발 애도 서사는 상처 극복이 목표로 설정되지만, 경하는 이와 정반대로 상처를 향해 나아가면서 차츰 상처를 공유하게 되며, 이에 따라 애도 감정은 나중에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유럽발 애도 서사 맥락에서 파악할 수는 없다.

백경릴게임 유럽발 애도 서사의 원인과 목표를 뒤집는 전개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강의 '작가론'인 까닭에 발생하는 특징이다. 작중인물 경하의 이력에 한강 자신의 이력을 겹쳐 놓은 것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작가론으로 써 내려가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경하는 아마를 살리기 위해 제주로 내려간다. 아미가 죽고 없는 상황은 인선의 어머니가 죽고 없다는 사실에 황금성게임다운로드 대응하며, 이는 무덤ㆍ목비가 바다에 잠기는 악몽의 현실 버전이다. 아마가 남겨진 목공방에 도달할 때까지 경하는 눈길에 미끄러져 돌과 바위에 계속 머리와 몸을 부딪치고, 눈더미 속에 파묻히는가 하면, 온몸의 감각을 잃어 동사凍死 상태에 빠진다. 이와 같은 위기로부터 경하를 살리는 것은 아마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하지만 새가 있어./ 손끝을 건드리는 감각이 있다./ 가느다란 맥박처럼 두드리는 게 있다./ 끊어질 듯 말 듯 손가락 끝으로 흘러드는 전류가 있다."(138쪽) 한강은 어떠한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아마'에 내재하는 일말의 가능성에 천착하여 세계의 전회轉回 근거를 마련하는 존재가 작가라고 작가론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픽셀즈.


한강은 작가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먼저 은폐하는 눈雪을 꿰뚫는 '번뜩이는 눈目'이다. 참상을 겪었거나 진상을 공유하는 인물들이 그러한 눈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체험한 참상을 인선에게 알려주는 베트남 노인의 눈빛은 "카메라 렌즈를 꿰뚫고, 그 뒤에 서 있었을 인선의 눈을 관통해"서 영상을 보는 경하의 "눈을 찔렀다."(97쪽) 4·3의 참상을 증언한 사진 속 노인에게서 "생기가 느껴지는 곳은 카메라를 향해 열린 두 눈뿐이"며(226쪽). 4·3을 설명하는 인선의 "물기 어린 눈이 돌연히 번쩍이며 내 눈을 꿰뚫"기도 한다.(238쪽) 이러한 눈目 이미지는 눈雪의 싸늘한 감각에 맞서 뜨거움을 동반한다. 인선과 경하가 4·3의 진상을 공유하는 동안 난로의 "달궈진 옆면에 뚫린 두 개의 붉은 구멍이 여전히 눈동자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199쪽) 내면의 불꽃이 외부로 분출하는 통로가 눈구멍인 셈이다.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 독립군 캠프로 복귀했다던 노인"은 "혼자만 산 이유를 알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불꽃 같은 게 활활 가슴에 일어서 얼어죽지 않은 것 같다고" 얘기하며(130-3쪽), 경하는 자신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134쪽)을 느끼고 있다.
아마를 구하기 위해 눈 속을 뚫고 나아가는 경하가 눈의 고통ㆍ상처를 동반하는 양상은 '눈雪 vs 눈目'의 대립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산간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경하의 고통은 "안구 안쪽에서 시작"되었고, "안구 안쪽으로 파고드는 통증이 점점 날카로워진다."(114-5쪽) 눈더미를 파헤치고 나아갈 때는 "덤불이 얼굴을 할퀴"어 "흥건한 피가 눈 아래에서 묻어난다."(141쪽) 작가의 자리는 "무딘 칼로 안구 안쪽을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중략)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점에서 마련된다.(120-1쪽) 대부분의 사람이 평온한 일상에서의 안락한 삶을 지향한다면, 작가는 일상에 가려진 고통을 응시하고 타자의 고통을 함께 앓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4·3의 참상이 드러나는 2부에서 경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눈 아래 찔린 상처가 더 이상 욱신거리지 않았다."(178쪽) 경하도 이제 '번뜩이는 눈目'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조건으로 제시된 두 번째 조건은 '손가락 끝의 신경감각'이다. "하지만 새가 있어./ 손끝을 건드리는 감각이 있다." 손가락 끝의 신경감각은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일깨우는 창구窓口이며, 인선이 보여줬던 의지의 연장이다. 인선은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목비 만드는 작업, 즉 '작별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검지와 엄지가 절단되었고, 봉합수술한 부위 "피가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삼 분에 한 번씩 (중략) 이십사 시간 동안"(40-1쪽) 봉합 부위를 찔러대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신경 위쪽이 죽어버리고 만다. "처음부터 깨끗이 포기했다면, 제주병원에서 절단 부위를 꿰매기만 하면 간단히 끝나는 거였는데"(42쪽), 어째서 인선은 봉합수술을 하여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당장 셔터를 누르려고 해도 그 손가락이 필요"한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 다시 말해 사진작가이기 때문이다.(42쪽)
만약 봉합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인선에게는 책임을 저버렸다는 죄책감(=통증)이 평생 따라붙었을 터이다. 의사는 이를 "지금은 물론 손가락을 지키는 편의 통증이 더 강하지만,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손쓸 수 없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42쪽) 설명하고 있다. 유령처럼 환지통幻肢痛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신과 세계를 잇는 신경감각은 인선에게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사진작가 인선과 소설가 경하는 작가라는 상위 범주에서 하나로 묶인다. 인선의 덕목을 경하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같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기실 '번뜩이는 눈目'과 '손가락 끝의 신경감각'을 둘러싼 사항은 은선의 어머니에게서 기원했다. 인선의 이모가 초등학교에 널린 시신들을 앞에 두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84쪽) 인선의 어머니는 일평생 4·3의 참상을 응시하면서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었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 사이에서 인선의 동생은 배와 턱 아래쪽에 총알구멍이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중략)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중략) 칼질을 하다 손가락에서 피가 날 때마다 생각났다고 엄마는 말했어. 손톱을 깊이 깎아서 상처가 날 때마다, 덜 아문 자리로 실수로 소금이 닿을 때마다 생각났다고 했어."(251-2쪽) 이처럼 '번뜩이는 눈目'과 '손가락 끝의 신경감각'은 인선의 어머니, 인선, 경하가 공유하는 자질이다. 이러한 자질은 서사의 흐름을 따라 인물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경하의 고투에서 드러나듯이 각자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갖추게 되며, 각 인물이 공유하는 자질을 드러내는 방식은 시의 전개에서처럼 반복ㆍ변형에 의거하고 있다.




사진=픽셀즈.


이러한 『작별하지 않는다』의 시적 산문으로서의 면모는 '수목형 사고'를 대체하는 인간형 모색과 관련이 있다. 들뢰즈ㆍ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리좀적 사고'를 제안했는바, 지면地面 아래의 리좀(땅속줄기)은 온갖 방향으로 확산하는 한편 곳곳의 마디에서 싹과 잎들을 올리고 뿌리를 내린다. 범박하게 정리하자면, 시공간적으로 얽힌 관계가 리좀처럼 펼쳐져 있고, 그 흐름 속에서 출현한 개별자는 고유성을 가지며, 이성理性에 선행하여 작용하는 정동情動(affect)을 방편으로 개별자들은 '(타자) 되기'를 통해 결연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리좀적 사고이다.(사진 참조) 소설에서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각 인물이 하나의 고원이라면, 인물들이 공유하는 자질은 리좀의 운동성에 닿아 있고, 어머니 되기를 통해 인선ㆍ경하가 아마あま로 자리 잡음으로써 세 사람은 결연하고 있다. 들뢰즈ㆍ가타리는 이를 '사이­존재론'이라 명명하였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한강은 사이­존재론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작중인물 경하와 같은 이력을 지닌 작가는 작품 바깥에서 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79호(2025)'에 '작가론으로서의『작별하지 않는다』연구 - 상징의 의미, 인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은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정리 요약한 것이다.?

홍기돈




홍기돈. ⓒ제주의소리


제주 출생. 1999년 『작가세계』 신인문학상 평론부문 당선하여 등단. 연구서로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소명출판), 『김동리 연구』(소명출판), 『민족의식의 사상사와 한국 근대문학』(소명출판)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리어던 밖의 공동체』(도서출판 각)가 있으며, 평론집 『페르세우스의 방패』(백의), 『인공낙원의 뒷골목』(실천문학), 『문학권력논쟁, 이후』(예옥), 『초월과 저항』(역락)을 상재하였고, 산문집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삶창)가 있다. 『비평과전망』, 『시경』, 『작가세계』 등에서 편집위원 역임.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