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공화당 주도로 연방 하원을 통과한 감세 법안에 법원 명령을 무력화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권력 남용을 사법부가 견제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에 '왕관' 씌울 조항 미국 노동장관을 지낸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공공정책 명예교수 로버트 라이시는 27일(현지시간) ‘공화당 예산안에 숨겨진 조치가삼성테크원 주식 트럼프를 왕으로 추대할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영국 가디언에 투고했다. 이 글에서 라이시는 “이 법안이 이미 기록적 수준인 미국의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연방법원을 무력화하는 조항”이라며 “그 조항은 트럼프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제약을 제거해 미국 민주주의를 끝장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식프로그램 해당 조항은 민사 소송 원고가 보증금을 걸지 않았을 경우 피고가 가처분 또는 효력 정지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연방법원이 법정 모욕죄 판결 집행을 위해 배정된 예산을 쓸 수 없다는 내용이다. 연방 민사 소송 규칙이 가처분이나 효력 정지 명령을 청구하는 사람에게 연방 판사가 보증금을 요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원증권황제 세입위원회 대변인은 미국 CNN방송에 경솔한 소송 남용을 막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실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2일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보증금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사실상 법정 모욕죄 처벌이 금지되는 것이다. UC버클리 로스쿨 학장인 어윈 체머런스키는 뉴스위크에 “이 조항은 반(反변액 )독점이나 경찰 개혁, 학교 인종차별 철폐 등 관련 소송의 기존 가처분 명령 대부분을 집행 불가능하게 만든다. 연방법원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 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고 말했다.
예산 패스트트랙의 조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대법원. 꽁머니 지난해 12월 17일 촬영된 사진이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조항을 삽입한 이유는 외국인 추방 등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대한 법원의 잇단 제동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3월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인 약 300명을 범죄조직원으로 몰고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해 엘살바도르로 추방한 것에 대해 워싱턴DC 연방지법의 고참 판사 제임스 보스버그가 법적 근거와 절차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조치를 철회하라고 명령한 일은 첨예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행정부가 사실상 법원 결정을 묵살하고 체류자 추방을 강행하자 보스버그 판사가 법정 모욕 혐의로 당국자를 기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 좌파 미치광이 판사가 대통령 권력을 찬탈하려 한다”며 탄핵까지 주장하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연방 공무원을 상대로 징역형 선고까지 가능한 법정 모욕죄 처벌권은 사법 명령 강제에 필수적인 권한이다. 이를 박탈하는 순간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이 판사의 판결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길이 트인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또 이 조치가 소송 비용을 크게 부풀려, 결과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위헌 소송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이 끝까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이 조항이 담긴 일명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은 세금 감면과 지출 감축이 핵심 목적인 세제·예산 통합 법안인데, 단순 표결로 통과시키는 대신 예산과 직접 관련 없는 조항은 삭제하도록 상·하원이 사전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버드 룰’(Byrd rule)로 불린다.
6주간 판사 162명 위협당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판사는 눈엣가시다. 미국 현충일인 26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악하고 위험한 이념에 사로잡힌, 미국을 증오하는 판사가 있다”며 저주했다. 판사를 특정한 ‘좌표 찍기’도 불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사 비난은 지지자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7일 미 연방보안청 자료를 인용해 “3월 초부터 4월 중순 사이 불과 6주간 162명의 판사가 위협을 당했다”며 “직전 5개월간 위협당한 판사가 8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적인 증가세”라고 보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