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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나온 모든 걸음은 역사가 됐다. 대중은 발레가 뭔지도 몰랐고, 업계는 토대가 빈약했던 때가 있었다. 한국을 찾은 해외 유수 무용수와 안무가는 “한국에선 발레단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 척박한 시절, 한국 발레계에 최태지, 문훈숙이 있었다.
“1980~90년대엔 발레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 콘크리트 바닥에서 점프를 했어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의 이야기에 오랜 동료인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맞장구를 친다. 그는 “그 때는 발레를 한다고 하면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며 “저희 어머니온라인황금성
는 누가 발레하는 사람을 며느리로 보냐고 했을 정도였다”며 웃었다.
두 사람이 이끌어온 지난 40여년은 한국 발레의 어제이자 오늘이었으며, 다가올 미래다. 불과 30대, 한국 발레계 사상 역대 최연소로 양대 발레단을 이끈 최태지(66) 전 국립발레단 단장과 문훈숙(62)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을 만나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실시간증권정보
“세상은 우리를 라이벌이라고 했지만, 사실 우린 서로의 성장 동력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여장부’ 최태지 vs ‘외유내강’ 문훈숙…韓 발레 혁신가
닮은듯 다르지만, 눈빛만 봐도 통했다. ‘화통한 여장부’ 유형의 최태지 단장과 ‘외유내강’ 형의 문훈숙 단장은 한국 발레계의 혁신가다릴게임꽁머니
. 한국 발레가 용솟음치려 하던 시절, 무용수들이 날아오를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한 도전에 주저함이 없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80년대였다. “그땐 둘 다 현역이라 가깝게 지내진 못했다”지만, 중력을 거스르던 시절에도 서로의 잔상은 또렷이 남아있다.
문 단장은 “‘백조의 호수’가 처음 본 언니(최태지 단장)의 릴게임다운
작품이었다”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가 1992년. 최 전 단장이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섰던 마지막 현역 시기다.
재일교포 2세 발레리나 오타니 야스에(大谷泰枝), 한국명 최태지. 가이타니 발레단 소속으로 일본발레협회 국비 장학생으로도 선정된 그는 일찌감치 유망주로 불렸다. 하지만 삶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일본 국적뽀빠이놀이터릴게임
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청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며 그의 발레 운명은 예기치 않은 곳으로 향했다.
“발레는 제게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알려준 예술이에요. 사실 그 시절 일본은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상당했어요. 그런데도 이전까진 한 번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죠. 이 일을 계기로 나라는 사람을 고민하게 됐고, 내가 과연 일본에서 발레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최태지)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1983년 5월, 최태지는 일본발레협회 회장이자 문화계 거물인 재일교포 시마다 히로시의 권유로 한국을 찾는다. 그의 제자이자 ‘한국 발레계의 대부’인 임성남 국립발레단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해 10월 그는 고국 무대에서 고마키 마사히데가 안무한 ‘셰헤라자데’의 주인공 조베이다 왕비 역으로 출연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1987년엔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특채로 발탁, 1992년까지 현역으로 무대에 섰다.
최태지 전 단장이 ‘일본파’라면, 문훈숙 단장은 ‘유럽파’다. 영국 로열발레학교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쳤다. 미국 워싱턴 발레단에서 활동했고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에서 아시아인 최초 객원 무용수로도 활약했다. 1984년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최 전 단장은 “춤추던 시절엔 많이 못 만났지만, 유니버설 발레단이 워낙 좋은 작품을 많이 해서 작품을 종종 보러갔다”며 “문 단장의 ‘지젤’과 ‘호두까기 인형’, ‘라 바야데르’를 모두 봤다. 이 단체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데다 화려한 무대에 감탄했다. 문 단장을 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있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유니버설발레단은 최정상 안무가의 춤, 그 춤을 추는 무대와 의상의 디자인까지 한 세트로 한국에 들여왔다. 다만 “의상과 세트 제작만 한국에서 했던 시기”가 1980~90년대다. 그 시절 대작 발레의 의상과 무대 장치 제작을 시도하며 한국의 공연제작 문화도 성장하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2001년 한국 초연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의 좁합무대 제작을 유니버설발레단 출신이 이끌었다.
그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가 술술 나왔다. 1988년 유니버설발레단을 찾았던 때였다. 최 전 단장은 “문 단장이 자수를 놓은 새하얀 튜튜(발레 치마)를 손보고 있었다”며 “국립발레단은 스프레이를 뿌려 의상을 만들었는데, 문 단장 의상은 어찌나 예쁘던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문 단장은 그야말로 ‘백색 발레’ 그 자체다. 서정적 로맨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무용수였다”고 했다.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대한민국발레축제 사무국 제공]
평행이론 ‘발레 인생’…가는 길마다 이정표 세운 두 거목
두 사람에겐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외국에서 나고 자라 고국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고, 한국 발레계 최초의 30대 출신 단체장으로 국내 발레 역사를 이끌며 시기마다 이정표를 세웠다.
양대 발레단의 수장으로 보낸 두 사람의 삶은 매순간 뜨거웠다. 후배 무용수들은 한결같이 “단장님들 앞에선 숨도 못 쉴 정도로 무서웠다”고 입을 모은다.
김주원은 “문 단장님이 조용한 카리스마라면, 최 단장님은 압도적 카리스마”라고 했다. 국립발레단 시절 최 전 단장과 함께했던 무용수들은 “굉장히 무서우셔서 단장님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벽이요, 나는 바닥이요’라고 되뇌며 숨을 죽였다”고 귀띔한다. 문 단장 역시 “언니를 ‘카리스마 최’라고 부른다”며 “그 당찬 모습과 열정이 언제나 부럽다”며 웃었다. 최 단장은 “문 단장에게 늘 ‘온실에서 나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 많은 경험 속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며 “쉬지 않고 단체를 이끄는 그 인내심이 늘 존경심이 든다”고 했다.
30대에 단체장 자리에 오른 이후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 최태지 단장은 “경쟁보다는 상생과 협업, 연대로 서로를 북돋던 시절이었다”고 돌아봤다.
1984년 창단한 유니버설발레단은 민간에서 피어나 한국 발레의 오늘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한국 발레 최초로 외국인 안무가와 예술감독을 영입해 척박한 토양을 다졌다. 해외 라이선스 작품을 국내 발레계에 선보였고, 해외 공연도 추진했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창작 발레를 개발한 것도 유니버설발레단이다.
문 단장은 “열악한 한국 발레의 여건을 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교육자와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돌멩이가 차이는 자갈밭을 다져 고속도로를 놓았던 시기”라고 했다. 같은 재단의 선화예중고는 발레 교육이 체계화되지 않던 시절, 한국 발레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인 애드리언 델라스는 1976년부터 선화예술학교에서 발레 지도교사로 자리하며 미래 세대를 육성했다. 문 단장 역시 델라스를 사사했다.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문 단장은 “무용수 한 명이 성장하는 데에 8년의 시간이 걸린다”며 “8년 뒤 정확히 유니버설 발레단이 창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단장 역시 “일찌감치 한국 발레의 산파 역할을 한 선화를 통해 배출된 한국 무용수가 70% 이상 된다”고 말을 보탰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역시 선화 출신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앞서 일군 성취를 빠르게 좇은 것은 국립발레단이었다. 최 전 단장은 두 번에 걸쳐 국립발레단을 이끌었다. 1996년에 취임해 3연임에 성공했고, 정동극장장(2004~2007년)을 거쳐 다시 발레단으로 돌아와 6년(2008~2013년)을 이끌었다. 그 시절의 한국 발레는 유례없는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국립단체라고는 하나 예산도 없고 지원도 부족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를 아십니까?’라고 할 만한 때였죠.(웃음) 상상도 못 하던 어려운 시기에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도와줄 게 없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며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댄스 플로어를 빌려주겠다고 했던 것도 기억나요.” (최태지)
국립발레단은 1997년 한국 발레 최초 ‘해설이 있는 발레’를 만들어 ‘발레 대중화’에 기여했다. 당시 유료 관객 점유율은 무려 90%에 달했다. 1999년 국립극장 전속에서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던 때엔 ‘발레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와 함께 탄탄한 레퍼토리를 구축했다.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2001년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이 2001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유료 관객 순위 1위, ‘백조의 호수’가 3위를 차지했다. 2위는 ‘조용필 콘서트’, 4위는 뮤지컬 ‘명성황후’, 5위는 오페라 ‘라보엠’이었다.
최 단장은 “국립단체가 해외 안무가를 데려다 외화 낭비를 한다고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며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어 만약 관객이 외면한다면 나를 자리에서 날리라고 했다. 죽기 살기로 뛰어들었는데, 돌이켜보면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무척 재밌게 일했다”고 했다.
이 시기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통해 러시아 발레 명작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지금도 국립발레단은 볼쇼이 발레단을 33년간 이끈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 ‘라 바야데르’를,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 발레단을 이끈 23년간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버전의 같지만 다른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두 발레단이 선보인 같은 작품, 다른 안무와 해석은 한국 발레의 오늘을 풍성하게 한 일등 공신이다.
“함께 단체를 이끌며 한국발레를 위해 달려온 시간은 우리에겐 축제였어요. 지금도 그 축제 열기를 이어가고 있고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며 한 발씩 나아가다 보니, 한국 발레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최태지, 문훈숙)
무용수 시절 최태지 [본인 제공]
“내게 발레는 도망칠 수 없던 운명, 혹독하고 고마운 친구”
현역 시절, 이들에게 발레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최 전 단장은 “늘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무용수 생활을 했다”며 “내내 자기와의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대체 이놈의 발레가 뭐길래 도망가려 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는 그는 “인생은 나를 알기 위해 헤매는 여행이었고, 발레는 운명적 일을 함께 하는 여행가였다”고 돌아본다.
문훈숙 단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게 발레는 혹독하지만 고마운 친구”라고 했다. 때론 ‘애증의 관계’였지만, 결국 삶을 풍요롭게 해준 선물이었다.
저마다의 발레를 이야기하며 두 사람은 눈을 맞추더니 “발레의 신이 사랑하면 도망칠 수 없을 거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로 도망칠 수 없었다”며 웃는다.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발레의 세계를 돌아보며 “무용수로의 시절은 전생인가 싶다”(최태지 전 단장)는 두 사람은 “이제 후배들이 하는 일에 박수를 치며, 새로운 세대가 해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발레계를 지켜보는 두 거목의 눈엔 애정이 가득하다. ‘운명 같은 발레’가 미래 세대에겐 더 찬란하길 바란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한국 발레의 미래를 오래도록 깊이 고민해온 두 사람은 환경도 인식도 달라져야 K-발레 생태계가 더 건강하리라 믿는다.
요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차세대 인재들 사이에서 ‘해외 진출’만을 정답으로 보는 시선이다.
문 단장은 “예전엔 무조건 해외에 나가야 더 빨리 성공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며 “좋은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을 만큼 우리 발레가 성장했다. 무용수의 기질에 따라 더 맞는 환경이 있으니 해외 진출만이 정답이라는 인식은 이제 벗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문훈숙 단장의 ‘라 바야데르’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최 전 단장 역시 문 단장의 말에 공감하며 “세계의 안무가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싶다고 느낄 만큼 한국 발레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많은 무용수들은 외국 발레단 진출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는 “발레단의 수준은 군무(코르드 발레)에서 결정된다. 무용수들이 체계적으로 한 걸음씩 도약해 기본기를 쌓아야 무용수도 발레단도 성장할 수 있는데 단계를 건너뛴 해외 진출엔 다소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든다”고 했다.
다만 무용수들이 국내에서 무대 경험을 꾸준히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다른 활동 없이 발레만으로도 먹고 살 걱정이 없어야 한다는 것도 두 사람은 강조한다.
최 전 단장은 “인센티브 제도나 공연 수다 제도의 도입으로 무대에 서는 만큼 무용수들의 수입을 보장해 주는 방식의 처우 개선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발레 무용수는 예술가이자 운동선수이고 배우여야 한다. 자신의 춤으로 경지에 오르는 과정도 험난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하는 혹독한 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두 단장님은 완벽주의자인 데다, 자신에게 엄청나게 엄격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 길에 이르는 것이 당연히 쉬울 리 없다.
문 단장은 이런 이유로 “무용수들의 정신, 심리 상담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역 무용수 시절 그는 일본에서 ‘백조의 호수’를 골리 당시 극심한 무대 공포증으로 1막 이후 화장을 모두 지우고 펑펑 울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예술감독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안아줬다. 그게 그렇게 위로가 돼 다시 무대에 나갈 수 있었다”며 그 역시 “무용수들을 말없이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소위 K-콘텐츠 시대 이후 한국의 많은 문화예술이 저마다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 발레가 한 단계 뛰어오르기 위한 마지막 단추는 ‘안무가 육성’이라고 강조한다.
“박세은, 김기민에 이어 전민철과 같은 스타 무용수가 배출됐으니 이제 한국 발레계엔 스타 안무가를 키워 다시 한 번 도약해야 해요. 훌륭한 창작 발레를 개발해 토양을 다지고, 한국의 발레 인재들이 국내에서도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돼 K-발레 시대가 오리라 믿어요.” (최태지, 문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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