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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혁명을 말하게 되는 시절인가 보다. 10월 한달 동안 ‘혁명’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볼 만한 거장의 영화 세편이 극장에 걸려 뜨겁게 회자되었다.
첫 작품은 폴 토머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다. “끝나지 않는 전투”라는 제목에 걸맞게, 영화는 백인우월주의 정부에 맞서는 혁명단체 ‘프렌치75’의 저항을 전면에 내세웠다.
두번째 작품은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해고 노동자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해나간다. 영화는 이 시대에 혁명이 불가능해진 이유를 보여준다. 더 이상 전선은 자 금리 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놓여 있지 않다. 갑은 천상을 누리는 사이, 을병정 사이에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격화된다. 동시에 인간은 지능을 갖춘 기계와도 경쟁해야 한다.
마지막 작품인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놀랍게도 현재 진행 중인 혁명의 순간을 포착했다. ‘원 배틀…’처럼 요란하지도 ‘어쩔수가없다’처럼 냉소적이지도 않은 이 개인회생신청절차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지 않나요?”
‘그저 사고였을 뿐’은 늦은 밤 에그발의 자동차가 고장 나면서 시작된다. 근처 정비소에서 임기응변으로 차를 수리해 집으로 돌아가지만, 문제는 다음날 벌어진다. 정비소에서 일하던 바히드가 그를 미행해서 납치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비밀은 곧 밝혀진다.
부동산담보신탁 과거, 바히드는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적이 있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일명 ‘페그 레그’로 통했던 정보관에게 잔혹하게 고문을 당했고, 그 일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고문을 당하는 내내 눈을 가리고 있었던 탓에 페그 레그를 바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바히드의 기억 주택관리공단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삐걱거리는 페그 레그의 의족 소리. 날마다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 소리. 에그발이 정비소를 찾았던 밤, 바히드는 그 의족 소리를 알아듣고 만 것이다.
바히드는 에그발을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으로 끌고 가 땅에 파묻으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행동을 멈춘다. 에그발이 페그 레그 중기청 종합관리시스템 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어진 바히드는 그의 정체를 확인해줄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사진작가 시바, 결혼식을 준비 중인 골리, 골리의 남편 알리, 그리고 건달이 된 하미드가 차례로 이 로드무비에 합류한다. 알리를 빼면 모두 함께 수감됐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경험한 공포와 모멸은 신체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바히드는 청각으로, 시바는 후각으로, 그리고 하미드는 촉각으로 페그 레그의 폭력을 기억한다. 그리고 에그발이 그자라는 사실을 감각하자마자 몸이 반응한다. 급격한 통증을 느끼거나,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구토를 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응징하지 못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당연한 진리처럼 보이는 ‘신화’를 살짝 비켜 간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그들과 똑같이 되지 않겠다”는 저항의 마음은 즉각적인 행동보다는 올바르게 판단하려는 고통스러운 신중함으로 이어진다. 이 딜레마는 각 캐릭터를 통해 조율된다. 바히드는 기질적인 선량함을, 시바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골리는 폭력의 문제를 끝까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하미드는 즉각적으로 폭력을 실행하려는 분노를 보여준다. 세 사람은 뾰족한 수가 없을 때도 어떻게든 하미드의 분노를 달래가며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이 영화가 “이쪽이 싫어 저쪽을 지지하는” 안티의 시대에, 안티가 아닌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혁명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 윤리에 대해 질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영화 속에서 시바와 골리, 두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이건 2022년 이란에서 펼쳐졌던 ‘여성·생명·자유 운동’의 결과다.
여성·생명·자유 운동은 스물두살의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의 복장 단속에 걸려 재교육센터로 이송되었다가 숨진 뒤 펼쳐진 이란의 시민혁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편적인 시위가 아니라 이란의 “시민불복종 운동의 역사적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란 시민사회의 저항 의지와 역량”(구기연)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역사적 사건 이후 이란 정부는 여성의 복장을 더욱 엄격하게 단속하는 법을 만들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이란의 여성들은 히잡을 벗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이 등장할 수 있는 건 이런 맥락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는 노동운동에 함께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란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온 여성 시민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이야말로 여전히 진행 중인 혁명의 묘사이자 이란 사회에 대한 혁명적인 묘사다.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에그발은 페그 레그였을까? 바히드와 동료들은 페그 레그를 응징했을까? 올해의 엔딩으로 꼽을 만한 마지막 장면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혁명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 윤리에 대해 질문한다. 배급사 제공
손희정 영화평론가
손희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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