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 발레 '스파르타쿠스' 공연 장면. /사진가 엘레나 페티소바





한국 국립발레단이 그의 안무작 ‘스파르타쿠스’를 공연한 지난 2016년 8월, 유리 그리고로비치 전 러시아 볼쇼이발레 예술감독이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서 무용수, 창작진과 대화하고 있다. 그의 얼굴 왼쪽으로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이 보인다. /국립발레단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1년간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안무가와 예술감독을 지낸 ‘볼쇼이의 상징’ 유리 그리고로비치(98)가 별세했다고 볼쇼이 극장이 19일 발표했다. 그리고원금보장ELS
로비치는 볼쇼이를 세계 최고 발레단 반열에 올려 놓은 예술가이자, 20세기 러시아 발레를 완성한 가장 위대한 안무가 중 한 명이었다. 외신들은 부고 기사에서 그를 “러시아 발레의 태두(supremo)”(로이터), “소련 발레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거장(maestro)”(가디언), “러시아 무용의 가장 독보적 영향력을 지닌 존재”(텔레그래프)라 불렀다주식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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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 남성미 ‘스파르타쿠스’
그리고로비치는 마린스키 다음 정도로 여겨졌던 볼쇼이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 시대를 열던 시기 안무가로 합류해, 혁신적인 작품들로 볼쇼이를 세계 최고를 다투는 발레단으로 만든 소비에트 러시아 발레의 영웅이었다. 1973년 소련 인민예술가로 선정됐고 1986년에는 사회주의 노동영주식초보
웅 칭호를 받았다.



볼쇼이 발레 '스파르타쿠스'. /사진가 대런 토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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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68년 초연한 ‘스파르타쿠스’는 이국적 캐릭터 댄스와 화려한 무대에 의존하던 발레리나 중심의 기존 발레 관습을 전복한 그의 대표작이다. 30명 넘는 남성 무용수들의 강렬한 군무, 발레리노 독무 하나하나에 마치 연극의 독백처럼 개성과 이야기를 부여하는 그의 스타일은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고, 발레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반 뇌제(전문가클럽
雷帝)’ 등 그의 독창적 안무작들은 특히 남성 무용수에게 엄청난 힘과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7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키로프 아카데미 오페라 발레 극장(현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에 입단해 1961년까지 발레리노로 활동했다. 1964년까지 마린스키 안무가를 거쳐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0년여간 볼쇼이의 수석 안무가를 맡았고, 1988년부터는 예술감독을 겸직했다.
◇“국립발레단의 또 다른 아버지 같아”



2016년 8월 '스파르타쿠스' 공연 뒤 강수진 단장과 인사 나누는 유리 그리고로비치. /국립발레단


그리고로비치는 특히 우리 국립발레단과도 인연이 깊다. 2000년부터 공연한 ‘호두까기인형’ ‘스파르타쿠스’ ‘백조의 호수’ 등 걸작과 지난해 세계 발레의 수퍼스타 마린스키 김기민과 파리오페라발레 박세은이 함께 무대에 선 ‘라 바야데르’ 등 국립의 주요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 6편이 그의 안무작이다. 최태지 전 단장은 20일 “남산 국립극장에 있던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이 돼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이전하면서 ‘호두까기인형’을 새로 올려야 했던 2000년, 유리 선생이 석 달간 서울에 머물며 직접 단원들을 지도해주셨다”고 회고했다.
유명 안무가들은 조수(대리 안무가)만 보내 연습시키고 자기는 마지막 체크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 하지만 최 전 단장과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 지도자 과정을 졸업한 한예종 김선희 교수가 그를 아버지처럼 깍듯이 모셨고, 한국의 정성이 냉정한 러시아 예술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마치 자신의 단원들인 것처럼 엄격하고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그리고로비치는 2001년 ‘스파르타쿠스’ 공연 땐 볼쇼이 프리마 발레리나 출신인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1941~2008)까지 함께 서초동 셋방에 머물며 연습실로 출근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가운데)가 안무한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초연 커튼콜.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엄마' 역으로 직접 무대에 선 당시 최태지 단장.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제공


그리고로비치에게 받은 훈련을 통해 김지영, 김주원, 이원국 등이 발레 대중화를 이끈 스타 무용수로 성장했다. 무용수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도 그의 무대에 선 경력은 ‘훈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볼쇼이를 제외한 세계 어느 발레단도 그의 안무작을 6편이나 레퍼토리로 보유한 곳은 없다. 최 전 단장은 “1대 단장 임성남 선생이 국립발레단의 ‘아버지’라면 유리 선생도 또 다른 아버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최 전 단장이 처음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작 세 편을 계약했을 땐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당시 시대 상황 탓에 “외화 낭비”로 모진 비판에 시달렸다.
“‘호두까기인형’ 공연 개막을 앞두고 가슴 졸일 때 유리 선생님이 어깨를 두드려 주며 ‘긴장되지?’ 하셨어요. ‘세상이 뭐라든 걱정하지 마’라고, ‘관객이 마지막에 기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면 우리도 행복한 거니 나를 믿어’라고 하셨죠.” 2001년 국립의 ‘호두까기인형’은 회당 평균 유료 관객 1727명으로 조용필 콘서트(회당 1662명)를 제치고 예술의전당 최고 흥행작이 됐다.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먼저 알아본 것이다.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국립발레단


최 전 단장은 “유리 선생님은 한국에 큰 선물을 두고 가신 드로셀마이어(발레 ‘호두까기인형’에서 주인공 소녀 마리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하는 마법사) 같은 분”이라며 “하늘에서도 한국 발레를 지켜보며 흐뭇해하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