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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해준송효
날짜 : 25-05-22
조회 :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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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심 기자]
올해부터 아파트의 음식물 쓰레기 수거 방식이 종량제 봉투 대신 중량에 따른 카드 결제 방식으로 바뀌었다. 종량제 봉투에 담을 때는 빈틈없이 꽉 채우려고 신경 썼는데, 이제는 물기를 빼는 걸 신경 쓴다. 시스템이 바뀐 것이 환경에 더 좋은 방식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플라스틱 용기를 보면 심각하게 마음이 불편했던 때가 있었다. 마트에서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것은 피하려고 애썼는데도 나 홀로 빚진 것 같은 마음은 늘 버거웠다. 그러다 이 정도는 괜찮다 파산선고결정 고 하며 한두 번 눈을 감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다. 역시 '자기기만'인가.
▲ ?목소리를 개인파산대출 드릴게요, 정세랑(지은이)
ⓒ 창비
지난 2020년 정세랑이 10년간 쓴 SF 소설을 엮어 낸 첫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가 영국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서난달의 새로운 표지로 5월 파산신고 다시 나왔다.
소설 속 세 번째 이이야기 '리셋'은 환경파괴와 문명에 관한 이야기다. 거대 지렁이로 인해 모든 문명이 파괴된 지구를 네 명의 화자가 일기 형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첫 장면은 경주에 출몰한 거대 지렁이다. 지렁이들은 도시는 헤집지만 숲은 지나친다. 식물들은 건드리지 않고 인간들이 만든 문명만 망가뜨린다.
개인 프리워크아웃 추진 시 유의하항
모닥불 가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나를 죽이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지렁이들은 제때 왔다. 우리가 다른 모든 종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기 전에 와줬다는 게 감사할 정도다. 궤도는 가까스로 수정되었다. 나는 배낭에 들어 있던 은박 담요를 덮고 잠들며 가끔 웃는다. 내가 죽고 다른 모든 것들이 살아날 거란 기쁨에. 신한마이카 신차 - '리셋' 중에
문명의 종말이 거대 지렁이 때문이라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땅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류는 숲을 파괴하고 더 큰 화학 공장을 세우고, 시멘트로 땅을 덮고, 사각의 시멘트를 두른 값비싼 집에 열광한다.
자연주의나 재활용을 통한 인류의 구원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너무 작고 먼 길처럼 느껴진다. 환경 구호는 절실한 자들의 간절한 외침이자 절실하지 않은 자들의 허울이 된다.
소설에서는 거대 지렁이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헤어지는 상황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 하던 분야에서 일을 이어가거나 인류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한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을지라도 다만 오늘을 살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일찍부터 흙과 지렁이에 친숙했던 사람들은 거대 지렁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렁이들이 플라스틱만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장 흔한 네 종류의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지렁이(Earthworm)가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미래의 앤'이 '지구(Earth)'를 위해 보낸 것이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지금 우리가 놓치는 메시지는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구원이 될까 하는.
거대 지렁이가 지나간 후 리셋된 지구는 이전과 달라진다. 인류는 더는 인간을 위해 다른 종들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지렁이들은 사하라 사막을 가장 비옥한 토양으로 바꿔 놓았다. 인류는 자원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한번 쓰고 버려지는 소품은 만들지 않는다. 여전히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안전한 삶을 방해하지만, 인간들은 바뀐 미래에 완전히 적응한다.
정세랑의 유니버스는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지구를 그리지만 불쾌하지 않다. 지구의 멸망시키고 다시 되돌리는 주체가 비 오는 날 언제나 발에 치이는 지렁이라는 사실은 인류를 향한 우아한 조롱 같다. 작가의 말대로 '디스토피아라는 어두운 미래의 진을 다 빼버리고 싶은, 가능성을 죽이고 싶은 욕망의 반영'은 공감되는 한편 아프기도 하다.
카트린 뵈닝게제, 프리데리케 바우어의 <종의 소멸>에서도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을 경고한다. 자연과 종의 소멸 문제는 인류의 존재론적 위기를 불러오지만, 누구도 극단적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생물다양성 감소는 멈추지 않고 있으며 자연에 부담을 주는 인류의 행위도 계속되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행동한다면, 자기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스스로 싹둑 잘라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꼬집는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에 사는 동식물 종수는 800만 종인데, 이 중 100만 종 이상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2000년 이후 지구에서 물과 공기를 걸러주는 필터 구실을 하고 이산화탄소 저장소 역할을 하는 650만 ha(헥타르·1㏊는 1만㎡)의 산림이 매년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종의 소멸은 인간에게도 크나큰 위협 요인이다. 이대로라면 대략 77년 후에는 더 이상 우림이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신속한 조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 카트린 뵈닝게제, 프리데리케 바우어 <종의 소멸> 중
일곱 번째 이야기인 '7교시'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오랜 진화의 결과로 맞이한 종말. 생태주의나 공동체 가치, 생태감수성이나 인권감수성은 문명과 성장이라는 정체불명의 목표와 항상 대립한다. 인간은 '온갖 동물을 온갖 방식으로 먹'었고, 자극에 취해 스스로 몸을 병들게 했으니 결과는 공멸이다.
수온 상승과 바닷물 산성화로 온 바다의 산호가 녹아 사라진 것은 2050년경의 일이었습니다. 바다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 것처럼, 멸종도 바다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류의 65퍼센트, 파충류의 40퍼센트, 양서류의 78퍼센트, 조류의 55퍼센트, 포유류의 34퍼센트가 21세기 끝 무렵까지 멸종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곤충과 무척추동물들이 사라졌을지는 추산되지도 않습니다. 식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요. - <목소리를 드릴게요> '7교시' 중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에 무감한 세상이다. 모든 자원을 파헤치고 없애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가진 집단처럼 인류는 마지막 남은 자원 하나까지 남김없이 쓸 태세다. 자원의 고갈 속도보다 더 빠르고 더 거대하게 쓰레기가 쏟아진다. 100억에 가까운 인구가 소비하고 남은 찌꺼기,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용기들은 4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니 이제는 억지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미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거대한 섬을 이루었고 또 비슷한 섬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도 베란다 재활용 바구니에는 종이 박스와 비슷한 부피로 플라스틱이 쌓이고 있다. 더는 물티슈를 사지 않겠다고 했던 나름 굳건했던 결심은 만성 허리 통증이라는 핑계로 마음을 접었다.
소설은 다양한 관점과 방식으로 종말을 경고한다. 정작 환경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제각각이다. 종말을 향한 폭주기관차인지도 모른 채 일등 칸에 몸을 싣고 향락에 취해 있거나 일등 칸을 향한 열망에 몰두하거나. 이대로라면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거대 지렁이의 출현을 차라리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 group 》 꾸역꾸역 북클럽 : https://omn.kr/group/bookclub_04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열심히 글로 잘 담아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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