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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금융 창업대출 “당신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한국관을 세우게 해주고 남북한 아티스트들이 함께 전시한다면…”
1994년 거장 백남준(1932~2006)은 베네치아 시장에게 불쑥 장밋빛 제안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바로 1년 전인 93년, 세계 최고권위의 격년제 국제미술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서브프라임이후 서 백남준이 독일관 대표작가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터라 제안은 무게감이 있었다. 문화유산 보호를 이유로 완고했던 마시모 카차리 시장은 솔깃해져 생각을 바꾼다. 아드리아 해가 내려다보이는 시내 자르디니 공원의 언덕의 화장실 벽돌건물과 그 주변 자리에 한국의 현대미술과 현대건축을 알리는 한국관을 짓게 해주겠다고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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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국관 건립에 앞서 나무와 금속틀로 제작했던 초창기 한국관 모형도 전시관 들머리에 나왔다. 화장실로 쓰였던 옛 벽돌건물에 원형의 실린더와 직사각형 평면의 건축물을 붙인 설계 구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1995년 베네치아 한국관 개관 당시 산마르코광장 회랑에 있는 올리베티 매장 전시장에서 처음 공개 자동차 유지비용 된 뒤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외부에 대여하지 않고 소장해왔다. 노형석 기자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나무 등 주변 생태를 건드리지 말 것, 둘째는 건립 뒤 시민들의 공공장소로 활용할 수 있게 하라는 것. 한국관을 추진하던 한국 정부는 두말없이 수락했다. 중견건축가 김석철(1943~2016)과 대만가권 베네치아 건축대 교수 프랑코 만쿠조(88)가 기존 화장실 벽돌건물에 건축물 전면이 대부분 유리 통창으로 된 원형 실린더+직사각형 평면 건축공간이 결합된 현대식 전시관을 설계해 1995년 개관한다. 지금 한국 현대미술과 현대건축이 세계 무대로 향하는 유력한 교두보가 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은 이렇게 지어져 현재에 이른다. 베네치아 시 쪽이 내건 조건중 첫째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나 두번째 조건은 이행되지 않았다. 한국의 국가대표 예술관이란 성격과 비엔날레 기간만 열린다는 공간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관에 서식하는 토우를 닮은 가상의 생물종 ‘나노기나’를 상상해 그들의 형태와 삶을 구현한 양예나 작가의 설치작품. 100년 이상 묵은 한국관의 벽돌건물 안에서 관객과 만난다. 노형석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취재진에 처음 공개된 2025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의 한국관 전시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깔고 한국관의 30년 시공간을 연구한 결과물들을 내보이는 자리였다.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란 전래 동요를 토대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이란 제목을 단 이번 전시의 특징은 돌아보는 눈길이었다. 싱그러운 5월의 녹음 속에 싸인 한국관 건물을 주위 환경과 조응하는 유기체로 상정하면서 그 몸체의 주위를 눈길로 어루만지듯 돌아보는 산책 답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그렇다. 공동 예술감독을 맡은 건축기획자 그룹 시에이시(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의 세 구성원인 정다영·김희정·정성규 큐레이터는 8일 오전 언론설명회 현장에서 내부의 작품들을 보기에 앞서 건물 주변에 난 낯선 오솔길을 걸어가는 20여 분간의 답사를 이끌면서 그동안 묻혀있던 한국관 건물의 독특한 모양새와 주변에 묻혀있던 생태, 지형 환경에 대한 조사 내용을 설명했다.
한국관 옥상에 돛을 펼쳐놓은 듯한 모양새로 설치된 김현종 작가의 설치물 ‘새로운 항해’. 노형석 기자
2018년 새로 닦은 한국관 정문 아래쪽의 오솔길을 따라 건물 주위를 둘러본 답사는 한국관 건물 외곽의 친생태적 디자인을 새삼 부각했다. 정다은 감독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입면을 꺾어서 지은 한국관 남쪽 전면의 테라스 부분을 가리키면서 “나무는 십여 년 전 죽고 빈자리로 남았지만, 한국관 건물은 전면과 측면 곳곳에 다른 국가관과 다르게 곡면과 꺾인 구석이 많은 특징을 지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생태 친화적인 요구와 생각들이 건립 당시 반영된데 따른 것으로, 환경위기가 심화한 현재 세계적 상황 속에서도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풀었다.
기획진은 주변 환경과 나무를 존중하며 지어진 한국관의 숨은 특징을 건축물 주요 부분이나 주변 수목들에 내력과 건립 초기 사진들을 담은 명패들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건물 앞부분을 돌아 측면의 백년 넘은 벽돌건물 전시실과 이번에 모처럼 개방된 옥상 공간, 그리고 한국관의 건축적 특징인 정문 옆 원형 실린더 공간 등에서 이런 명패 작업들을 볼 수 있고, 내부 공간에서는 95년 건립과정을 담은 도면과 당시 사진 등의 아카이브가 상영됐다. 내부에 원래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지만, 이후 전시과정에서 사라지고 외부계단이 설치된 사실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건축물의 내외부 시공간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획자들의 작업이 있는 한편으로, 내부에서는 한국관의 현재와 미래를 상상으로 풀어놓은 참여작가 김현종(아뜰리에케이에이치제이), 박희찬(스튜디오히치), 양예나(플라스티크판타스티크), 이다미(플로라앤파우나)씨의 신작들이 펼쳐졌다. 건축과 설치미술 등을 자유로이 오가면서 새집을 짓는 동요 속 두꺼비처럼 한국관을 재조명한 작업들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거의 조명되지 않았던 한국관 건물 외곽의 친생태적 디자인을 부각한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입면을 꺾어서 지은 한국관 남쪽 전면의 테라스 부분. 노형석 기자
전시장 내부에는 공간마다 필요에 따라 벤치나 사다리 등 여러 용도로 탈바꿈하는 박희찬 작가의 가변 설치물 ‘자르디니 건축여행자’에 관객들이 앉아서 베네치아 한국관의 지난 역사와 생태환경을 보여주는 영상을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 작가는 햇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한국관 주위 나무들의 실루엣을 보여주는 스크린 모양의 ‘그림자 감지장치’와 한국관 위쪽의 주변 풍광을 잠망경처럼 포착하는 ‘엘리베이티드 게이즈 1995’도 선보였다. 천장 위쪽으로 뚫린 투명 창으로는 돛을 펼쳐놓은 듯한 김현종 작가의 설치물 ‘새로운 항해’가 보이는데, 옥상에 올라가면 멀리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이 조망되는 광경과 함께 항해하는 경관을 연출했다. 땅 위에 발판을 놓고 떠 있는 얼개의 한국관 건축물에서 그 아래 서식하는 토우를 닮은 가상의 생물종 ‘나노기나’를 상상해 그들의 형태와 삶을 구현한 재독작가 양예나씨의 신작들은 풍선 모양의 조형물에 새겨진 형상과 실제 건물 밑 풍경을 담은 영상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었다. 한국관의 터줏대감인 길고양이 ‘무카’가 자기 집처럼 자고 어슬렁거리는 광경을 천 작업 위에 펼쳐놓은 이다미 작가의 작업은 ‘덮어쓰기, 덮어씌우기’란 제목 아래 지난 한국관의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생물, 비생물 존재들을 드러내는 공간을 펼쳐놓았다.
역대 한국관 건축전 가운데 가장 젊은 기획자와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한국관의 30주년 역사를 아카이브와 상상력 측면에서 다각도로 바라보며 감각적인 힐링 스타일 전시로 갈무리했다는 점을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총감독인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라띠가 ‘지성적·자연적·인공적·집단적’이란 열쇳말로 전지구적 생태 위기에 대한 건축의 응전을 주문한 전체 행사 기조와는 다분히 거리가 있다. 다른 국가관보다 역사가 짧고 전시 콘텐츠의 층위도 얇은 한국관 자체에 대한 설명의 맥락에 전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전시 콘텐츠의 의미가 지닌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 지난 30년간 한국관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이 별로 없었다는 업보를 그대로 짊어진 자리인 셈이다. 전시는 11월23일까지.
베네치아/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