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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겨울. 그해는 어느 해보다 추웠다. 나라를 휩쓴 외환위기. 세금을 쏟아부어 겨우 파산을 면한 은행들은 돈줄을 조였다. 공장을 돌릴 돈마저 씨가 마른 기업들. 도산 공포는 전염병처럼 퍼졌다. 기업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인력구조조정. 그때 유행한 말이다. 누가 지었는지 용어만 보면 번듯한 경제학 용어처럼 그럴싸하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처참한 실상이 드러난다. 그것은 임직원을 쫓아내는 일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이 넘쳐 흘렀다. 그해 겨울에도, 이듬해에도. 직장을 잃은 가장들, 파산한 기업인들…. 절망한 그들은 갈 곳을 잃고 골판지와 신문지로 찬바람을 막으며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혹독한 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노숙인 보호시설이 생긴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사오정. 역시 그때 유행한 말이다. 40·50대가 직장에서 쫓겨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45세 정년’이라는 비아냥 투의 뜻을 담았다.

‘사오정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40대가 고용시장에서 찬밥 신세로 변한 지는 오래다. 지난해 내내 전년동기대비 월 5만2000∼15만8000명 감소한 40대 취업자는 올해 더 큰 폭으로 줄고 있다. 7월 감소폭은 17만9000명. 반기업 정책에 멍들고, 경제 외풍에 서리를 맞은 결과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시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제조업 생산직, 도소매업, 자영업자에서 40대 취업자가 주로 감소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오정 시대다.

40대만 그럴까. 실업률, 실업자 수, 청년실업률 어느 것을 봐도 20년 만에 처음 보는 최악의 기록이다.

상황은 나아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온통 잿빛투성이다. 감원은 또 시작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7년 만에 대규모 감원에 들어간다. 부산공장 인력의 20%를 내보낸다고 한다. 쌍용차, 만도도 감원을 시작했다. 일본 경제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여타 산업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많은 40대 직장인은 또 살생부에 오르게 생겼다.

40대 가장들. 그들은 아픈 시대에 서 있다. 그들은 가정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답답할 뿐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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